1974년 늦은 가을 남녘 하늘에 샛별이 떴다. 전국우수고교 초청 야구대회. 그해 청룡기, 황금사자기 등 전국대회에서 우승, 준우승한 팀만 초청해서 왕중왕을 가리는 경기. 부산공설운동장에서
열렸다. 이 대회는 한때 맥이 끊어졌다가 21회 전재호 회장님의 파이낸셜 뉴스가 부활시켜 개최하고 있다. 우리는 국제신보사가 주최한 화랑기 준우승팀으로 막차를 타고 합류했다.
당시의 고교야구는 경북고와 대구상고가 양분하고 있었는데 그 대구상고와 준결승에서 만났다. 그들은 우리를 만만하게 보았을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1학년이 마운드에 올라 있으니. 하지만 그는
최동원. 가장 빠른 공, 가장 느린 공,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커브, 솟아오르는 직구, 한마디로 만찢구 (만화를 찢고 나온 공)를 던졌다. 첫 3회전 타자 일순하는 동안 대구상고는 오직 4번
타자 장효조만이 공을 다이어몬드 안으로 겨우 굴렸을 뿐이었다.
결승에서는 경북고가 셧아웃 당했고, 패자부활전에서 올라온 그 둘 중 한 팀은 한번 더 최동원의 제단에 바쳐져야 했다. 평소 경남고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던 부산 CBS 라디오 해설자는 목
놓아 외치고 또 외쳤다. “남녘 하늘에 샛별이 떴습니다.” 그리고 대학입시를 치고, 구덕산 기슭을 떠나 서울로 왔다. 어즈버 반세기가 흘렀다.
나의 살던 고향은? 어디서 태어나 자랐건 “꽃피는 산골”입니다. 수십년 객지를 떠돌아 다녀도 마을 어귀 느티나무는 늘 우람하고 푸르게 뇌리에 박혀 있으며, 어머니 얼굴은 곱고 자애로운
모습으로 눈 감으면 눈 속에 떠오르지요. 그러다가 실로 오랜만에 고향에 가면, 저게 그 느티나무인가 쉽고, 부여안은 어머니의 흰머리가 눈부시어 웁니다.
제게 동창회가 그러하였습니다.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이 오래도록 활약하였고, 행사는 성대하게 치렀습니다. 그래서 저를 포함 많은 동문들 마음속에 재경동창회는 태산북두와 같은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잡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29회의 순서가 와서 우여곡절 끝에 제가 회장의 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가문의 영광입니다. 하지만 막상 회무를 파악해 나갈수록 일종의 위기의식을
느낍니다. 한마디로 인구절벽을 맞은 것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우리나라가 노령화 및 인구감소로 인해 직면하고 있는 도전 보다 몇배 더합니다.
생각 끝에 대학동기회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물었습니다. 너네들은 동창회가 잘 되고 있냐? 서울에 있는 고교들은 여건이 그나마 나았습니다. 졸업생 모두에 서울에 남았으니까요. 우리 동향의
부산고는? 큰 인물이 많지 않았던 까닭에 졸업생 거의 모두가 참여하고 회비를 내는 기조가 일찍부터 자리 잡았습니다. 회보에 회비 납부자 명단을 굳이 싣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러면 동래고는?
더욱 빨리 이 길로 갔습니다. 재경골프대회도 꾸준히 열었는데 경비를 거의 일반 참가비로 충당합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동창회에 봉사하여 사정을 잘 아는 동문들은 매달 만원씩 자동이체하는 켐페인이 절실하다고 생각해 왔답니다. 제가 “잘 되겠나요” 했더니, 그들은 자동이체를 그냥 시작해
버렸습니다. 달리 방법이 있냐면서. 이름도 붙였습니다. “만세용마”. 제가 29회 동기회에 알렸더니 매달 29일을 자동이체의 날로 정했습니다. 만세용마 운동에 많은 선후배님들의 참여를
앙망합니다. 그러면 더 많은 모임과 만남, 행사를 재경동창회가 주선할 수 있고 후배들에게 까지 길이 전수될 것입니다.
집의 애들에게 너네들 동기회 하니? 물었습니다. 우리 때 동기회가 결성되던 나이가 되었으니까요. 그랬더니 그게 뭐냐는 표정입니다. 동창회는 이제 시효가 지난 사양산업일까요?
오래전 갑자기 출근하지 않게 되어 연말에 모든 동기 모임에 모처럼 다 나갔습니다. “여 오랜만이다. 같이 한잔 하자.” 고 하면서 다른 말 없이 소주잔을 채워주었습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날 동기의 우정이 참 소중하고 특별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후에도 여러 번 느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참석합니다. 최근에는 재경동창회 일로 여러 선후배님들을 만납니다. 그렇게 쉽게 그리고
빨리 신뢰에 기반을 둔 대화를 시작했던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소위 MZ 세대는 이러한 경험이 없기에 소중한 하나를 잊고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동창회는 21세기를 사는데 있어서도,
어쩌면 짧고 피상적인 만남만 이어지는 지금 세대에 더욱 소중한 플랫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 마침 동문을 만났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는 장면이 더러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누렸던 특권을
길이 우리 후배들도 누릴 수 있도록 지금부터 인프라을 다시 정비하는 게 우리의 책무이고 사명이라 여깁니다. 그리고 반드시 보람이 있을 것입니다.
“만세용마”가 이를 이루는 좌청룡이라면 “재경통신”은 우백호입니다. Out of sight, out of mind. 학교 때 배운 영어입니다. 자주 만나야 한다는 의미인데 요즘은 SNS가 잘
발달되어 있어 이를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미국 유수의 대학들은 졸업생들에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캠퍼스 동정, 패컬티 연구, 국제적 현안에 대한 시론, 동문 소식, 행사 중
최소 한가지를 이멜로 보내어서 모교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를 유발합니다.
우리도 이멜 주소록을 확충하겠습니다. 먼저 기본 주소록도 정비해야죠. 용마회보를 4,500부 발송하는데 구독료 납부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은 주소 부실에도 큰 원인이 있다 여겨집니다.
그런데 이들은 일방통행인 반면 카톡을 활용하면 쌍방향 통신이 가능합니다. 모두를 한방에 모실 수는 없으니 집행부와 각 기수별 및 동호회의 회장 총무 등이 참가하는 본부 카톡방이 있고 이들이
톡을 중계하는 방식을 “재경통신”이라 명명했습니다.
공지사항이나 동문 동정 뿐 아니라 용마회보 기사도 작성되는 대로 그때 그때 보낸다면 가독성이 일층 제고될 것입니다. 기별로 활동사항이나 소식, 또는 동호회 활동 등을 본부 톡방이 올리면 이를
중개해서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참고하거나 나아가 참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재경통신이 성공해서 구슬 서 말을 꿴 보배가 되면 그 차체로 동창회는 활성화된 것입니다. 나아가 홈페이지를
확충해서 보다 완결된 정보를 원하는 분들이 손쉽게 활용할 수 있게 하면 카톡의 단점도 효과적으로 보완될 것입니다. 중개 역할을 해야 하는 각 회장 총무님들 또는 별도로 지정한 담당자 분들의
열성적인 참여와 헌신이 성공의 열쇠입니다. 부탁드립니다.
만세용마, 재경통신 이 둘이 재경동창회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양쪽 바퀴입니다. 물론 이 둘로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의미 있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마크 트웨인은 홍수가 나면 수로가 바뀌고
구불구불 흐르는 미시시피 강 지류에서 배를 몰려면, 일단 바깥 쪽으로 배를 붙여야 한다 했습니다. 골프로 설명하면 쉽겠네요. 처음 가는 골프장에서 캐디도 없이 왼쪽 도그렉 홀을 만나면
페어웨이 오른쪽 가장자리로 티샷을 보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면 세컨드 샷이 보이겠죠. 만세용마, 재경통신은 재경동창회가 지속가능하게 나아가는 굿 티샷이 될 것입니다. 모든
동문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특히 각 기수별로 회장 총무님들이 적극 나서 주시기를 앙망합니다. 저는 올 한해 만나는 사람마다 이를 강조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경남중고
동창회 100년사” 도 알차게 편찬될 수 있게 합시다. 후라 경고!